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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 생명은 죽음을 얼마큼 포용(embrace)하고 있을까?
작성자 구자춘 등록일 2021-12-03 22:12:52 조회수 49

우리들은 죽음이란 것을 꿈 속에서나 느껴보는 희미한 것 정도로 알고 지내왔는데, 우리 삶의 깊숙한 곳에 매복되어 있던 것이 예고없이 우리 주위에 불쑥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화들 짝 놀라게 된다. 죽음은 공포스럽고, 불합리한 것으로 우리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고, 더구나 입 밖에 내어 말하지도 않으려는 것이 우리들의 속 마음이다.

사람들은 죽음이 삶의 끝장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인데도 말이다. 왜냐하면, 죽음은 우리들이 살아오는 동안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 삶의 최후의 순간이며 동시에 새로운 삶인 영생으로 들어가는 최초의 경험이지만,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두 삶 사이에 있는 찰나적인 순간에 불과하다. 한 삶은 지나왔고, 또 다른 삶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삶을 깊이 있게 살펴 보면 거기엔 항상 죽음이 뒤 따라 오고 있음을 알게된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 시작된다.삶의 매 순간 순간은 또한 죽음의 순간이기도 하다. 이 둘을 분리 시켜 생각하는것은 불가능하다. 삶과 죽음은 두개가 서로 독립된 현상이 아니라, 새에 붙어있는 양쪽 날개와 같다. 어느 한쪽 날개로만 으로는  결코 날 수가 없다. 삶이 죽음을 함축하고 있으며, 죽음 또한 삶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 둘은 서로  귀속, 귀의 되고있음을 깨닫게 된다.

믿는 우리들은 죽음이란 한 영혼이 이 육체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 안으로 옮겨 가는 것으로  본다. 죽음을 내적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아름다운 여정이지만, 제 3자의 눈에는 겉으로 드러난 시신만 생각되며 두렵고 무서운 것으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실체로 보여진다. 영적인 눈으로 죽음을 본다면 자신이 육체의 감옥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높은 곳에서 자신을 육체가 아닌, 순수한 의식(consciousness)의 형태로 무한하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존재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젊은 나이에 빨리 죽었다, 어떤 사람은 늦게까지 살다 죽었다라는 말을  우리가 할때, 그 기준은 무엇일까?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은 3-40대에 죽은 것이고, 늦게까지 살았다고 할 때는  90세, 100세까지 살았던 나이일까?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었을때 죽었던 삶은 없을까? 오래 살아도, 옛날에 이미 죽은 것과 같이 사는 사람에게는 그 삶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 기간은 텅 비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하루 세끼 식사만 하면서 연명하고 있다면, 마치 풀 한 포기 조차 없는 사막에서 그저 죽음 만을 기다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 삶에는 졸졸 흐르는 실 개천 조차 없을 것이다. 물론 사계절의 변화도 없을 것이다. 그런 삶에서 어떤 새로운 창조의 기운을 기대할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하기를 포기하는 날, 창조하고 성장하기를 멈추는 날, 자신의 삶에 대한 목표를 잃어 버리는 그 날이 바로 엄밀한 의미에서 그 사람의 죽은 날자가 아닐까?

우리 모두는 알맞은 때에 죽기를 원한다. 알맞은 때가 언제 일까?  짧은 삶을 산다해도, 열망(passion)을 가지고 강렬하게 산다면 그 삶은 하나의 노래가 되고, 춤이 될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길고 짧음은 의미가 없다. 깊이있는 삶이 최고의 가치가 있다.                   

예수님은 33살에 돌아 가셨지만, 죽기 전 그의 삶은 열망으로 꽉 차 있었으며, 열매와 수확이 충만하였다. 그의 죽음은 성취였다. 예수님은 창조적인 삶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예수님 삶의 잔은 생명으로 가득 찼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지구 위에서 우물쭈물 할 필요가 없다. 그는 자신이 가도록 운명 지어 진 곳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 갈  수 있다.

“너무 일찍 죽지도 말고, 너무 오래 살지도 말고, 알 맞은 때에 죽자.” 누가 이런 말을 감히 할 수 있을까? 자신이 구원 받은 것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기 위해 혼신을 다해 아낌없이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만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죽을 때를 안다.그들의 죽음은 완성이기 때문이다. 

오직 창조적인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에게만 생명력이 있게 마련이다.이때 생명력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존재계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깨닫고, 즐기고, 보탬이 되는 과정이다.이 생명력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사랑과, 헌신과, 기쁨으로 가득 찬 창조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생명력의 가장 큰 비밀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은 영원함을 뜻한다. 죽음을 포용 (embrace)하는 것이다.  흡수하는 것이다.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우리와 함께 있어 왔고, 우리가 죽은 후에도 우리와 함께 계실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이 단순한 진리가  내 것이 될 때, 비로서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떤 억압이나, 박해나, 죽음 까지도 우리들의 자유 함을 빼앗아 갈수 없게  된다는 신념이 서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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