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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음식점에서 짜장면, 짬뽕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때, 생기는 고민(2/2): 퍼온 글
작성자 구자춘 등록일 2022-08-17 03:22:57 조회수 36

(주: continued from 1/2. 

아래 내용은 연결의 후반 부분이기 때문에, 같은 제목의 1/2 편을 먼저 읽은다음, 읽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톱이나 망치의 본질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부여 받은 책무가 없으니, 성장하면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하는 존재다.  이처럼 ‘실존’이란 인간의 무한한 선택의 자유의지를 뜻한다. 톱이나, 망치의 입장에서 보면 무한정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가 한없이 부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제도나 윤리에 의해서 만들어 놓은 ‘본질’에 따라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선택하거나 결정하고, 우리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늘 고뇌하고 불안에 휩싸일 수 밖에 없다. 선택의 폭이, 선택의 자유가 너무나 광범위 하다보니 자신의 자유를  오용, 남용하기도 하며, 또 스스로 포기하려 들기도 한다.

이런 고민에서 탈피하기 위해, 신앙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마음의 싹이 튼다.  신앙에 보험을 들려는 마음이다. 신앙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다 보니, 처음부터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마음부터 생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합리적인 논증 방법으로 자신의 신앙을 설명해 낼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신앙이란 것이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2세기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불합리 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아주 중요한 진리를 지적해 주고 있다. 우리는 ‘논리적 판단’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선택’에 의해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키에르케고르 (Soeren Kierkegaard)는 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었다.  당신이 칼을 든 살인마에게 쫒기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도망치던 중 어느 순간 절벽 끝으로 몰리게 되었다. 당신이 서 있는 절벽 한 쪽 끝에서 가까운 절벽까지 과연 뛰어 넘어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당신이 절벽 앞에서 머뭇 거리고있는 순간에도 당신을 쫒는 살인마는 당신에게 달려 오고 있다.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할 것이다.  하나는 절벽에서 뒤 돌아서서 살인마에게 달려가 그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상대는 칼을 든 살인마이니, 싸워서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른 하나의 선택은 온 힘을 다해 다른 절벽으로 뛰어 넘어 보는 일이다.                                                               

신앙이란 마치 생사가 불확실한 절벽의 끝에서 반대쪽 절벽으로 뛰어 넘어가려는 시도다. 절벽을 넘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구원할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할 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들은 구원의 가능성을 바라고 삶을 던지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들은 인생에서 맞닥 뜨리게 되는 불안과 절망과, 죄와 죽음의 치열한 한계상황 앞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은 우리에게 계속 다가오고 있고, 세상은 부조리와 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신앙인은 결단을 내린다. 신의 구원을 믿어 보기로, 신앙을 선택해 보기로, 내 모든 것을 던져 절벽을 뛰어 넘어 보기로 말이다.  모험 없이는 신앙이 있을 수 없다.  엄밀하게 말해서 신앙은 개인의 내향성이 갖는 끝없는 열정과 객관적인 불확실성간의 모순이다.  내가 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믿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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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수(2022-08-26 00:57:27)

    "그들은 인생에서 맞닥 뜨리게 되는 불안과 절망과, 죄와 죽음의 치열한 한계상황 앞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들이다." 신앙인의 거울을 보는 듯하여 공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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