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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바다에 미쳤다. : 강동석 (3/3)
작성자 구자춘 등록일 2022-12-25 00:18:10 조회수 12

나폴레옹의 유배지 세인트 헬레나 (3/3)

“특별한 기상변동은 없고, 해상도 별 이상 없음. 앞으로 3-4일간 항해하기에 좋은 날씨임” 기상청의 예보를 믿는 게 잘못이었다. 떠나기 전 몇 차례나 문의를 해 봤더니 한결같이 이상 없다는 말에 마음을 푹 놓고 닻을 올렸건만 그것이 완전 오보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1995년 3월 9일 대서양 초입에 닿기도 전에 배는 바다 위에서 미친 듯이 날 뛰고 있었다. 난 또다시 죽음의 공포와 마주서야 했다. 아무도 없는 이 좁은 요트 안에서 마주치는 죽음의 모습은 아주 고약하다. 지금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갖 회한들이 뇌리를 흝고 지나갔다. 무엇 하러 바다에 나왔던가?  분명 남들처럼 그냥 편안하게 살수도 있었는데…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곧잘 잊어버리곤 하는 나의 꿈, 세계일주 단독항해라는 그 꿈을 떠올렸다. 그 동안 수십 번 겪었어도 익숙해 지지 않는 공포 속에서 나는 의연해지려, 스스로에게 당당해 지려 애를 썼다.  그 순간 내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살아야 한다. 이 험한 바다를 뚫고 살아 남아야 한다.’ 생존을 위한 가장 본능적인 목표, 오직 그것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극히 단순하고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내 온몸의 힘을 바치는 것이다.  나는 태평양을 건너고, 인도양의 그 험난한 바다를 뚫고 나왔다는 사실마저 까맣게 잊은 채였다. 바다는 매번 새로운 공포 속에 항해 자를 위협한다.                                             

어차피 삶도 죽음도 내 소관이 아니라면 이 상황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린들 무슨 소용이냐 싶었던 것이다.  죽음이 기어이 나를 쓰러뜨릴 작정이라면 더 이상 마음 고생 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고 싶었다. 자연과, 혹은 죽음과의 맞대결이란 어차피 불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릴 뿐, 어찌 자연에 도전하여 죽음과 맞설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여전히 바람은 거세게 불어 닥쳤으나, 바로 몇 시간 전처럼 그악스럽지는 않았다. 또 한번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바다는 언제 그렇게 포악을 떨었냐는 듯 이튿날부터 내내 평온함을 유지하였다.

영국령인 세인트 헬레나 제임스 타운은 인구 5,000명의 화산 섬으로 한달에 한두번씩 영국 선박이 실어다 주는 생필품에 의존해 살고있는 촌락이다.  나폴레옹이 죽을 때까지 살고있었던 롱우드하우스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하며, 나폴레옹의 시신은 불란서로 옮겨가 흔적만 남아 있다.

바다를 오가는 수많은 상선과 유조선, 그외 암초나 갑작스런 장애물과의 충돌위험 때문에 24시간 잠을 단  한순 자지 못하고 사방을 주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이 작은 요트가 바다 속으로 모든 걸 송두리째 삼켜 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항해자와 바다는 동지인 것 같으면서도, 냉혹한 적수로서 묘한 동반자관계이다.  돌발 상황이 없을 때는, 해안에서 150km. 정도를 벗어난 후의 생활은 육지에서와 크게 다를바 없다.

대양을 지나다 보면 며칠 동안 주변에 무인도는 커녕 지나가는 배 한척 구경 못할 때가 많다. 보이는 거라고는 구름, 바다, 해와 별, 달 뿐인 바다를 몇 날, 며칠이고 떠다니다 보면 육지에서 사소하게 지나쳐 버렸던 모든 것들이 사뭇 눈물겹고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번은 그렇듯 지독한 외로움으로 몸살을 앓으며 바다를 건너고 있는데 난데없이 파리 한 마리가 선실 안을 날아 다니고 있었다. 평소에는 불결하다고 질색을 했던 그 파리가 그 때는 왜 그렇게 반갑던지.. 파리는 마치 육지의 일부 같았다. 어디서 부터 길을 잃었는지 육지에 살아야 할 미물이 바다에 까지 흘러 들어온 것도 신기했지먄, 저도 사람 냄새가 그리웠던 모양으로 5일 동안이나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그 파리가 당시 내가 바다에서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육지의 생명체였다. 나는 녀석이 가급적 오래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밥풀 찌꺼기며 음식물들을 일부러 선실 구석구석에 떨어뜨펴 놓고는 온갖 친절을 다 베풀었다.  또 혼자서 책을 읽다가 녀석이 행여 심심해 할까 바, 큰 소리로 읽어 주기도 하고, 음악도 틀어주고…. 녀석은 내가 깜박 잠든 사이에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다.  그 섭섭함이란… 오랫동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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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bitha(2022-12-28 09:25:16)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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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영(2022-12-28 01:45:11)

    "어차피 삶도 죽음도 내 소관이 아니라면 이 상황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린들 무슨 소용이냐 싶었던 것이다. 죽음이 기어이 나를 쓰러뜨릴 작정이라면 더 이상 마음 고생 없이 편안하게 눈을 감고 싶었다. 자연과, 혹은 죽음과의 맞대결이란 어차피 불가능한 일 아니겠는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릴 뿐, 어찌 자연에 도전하여 죽음과 맞설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하나님아버지께 모든 상황을 맡기는 것과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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