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용하고 계신 브라우저는 오래되었습니다.
알려진 보안 취약점이 존재하며, 새로운 웹사이트가 깨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최신 브라우저로 업데이트 하세요!
오늘 하루 이 창을 열지 않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 바로가기

게시판 내용
Corona Virus (Covid-19) Pandemic, 성경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까? (1/2): 권건우 목사
작성자 구자춘 등록일 2023-03-03 02:49:47 조회수 21

(주: 이 글은 시카고 기쁨의 교회에서 열리는 webinar에서 교우들과 나눔을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것을 요약 발췌한 것이다. 권건우 목사는 현재 시카고 Loyola University에서 정치 신학과 윤리학 박사 과정 중 이시다.)

 

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팬데믹 상황은 전 지구적으로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결과,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인간의 주위에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인수공통 질병(zoonotic diseases)이 퍼진 결과로 본다. 팬데믹은 일차적으로 인간의 행위로 촉발된 결과이지, 하나님의 의지가 개입된 사태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벌어지는 죽음과 고통의 배후에 하나님의 종말론적 섭리와 계획이 있다고 해석할 경우, 선하고 정의로우신운 하나님에게 ‘악’을 귀속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주류 기독교 전통에 따르면, 우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님은 악을 ‘허용’ 하시지만 , 결코 악을 직접적으로 ‘발생’시키지는 않으신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롬 8:22).' 이 죄와 죽음의 질서에서 해방되는 것이 기독교의 종말론적 비젼이다.  따라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종말적인 수단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위배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그의 <신국론>에서 기독교인들은 종말론적 평화(eternal peace)를 바라보지만, 동시에 지상에서 유한한 평화(temporal peace)를 추구해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세상 속’에서 신실하게 현존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타계적인 천국만을 바라보는 것은 심각한 책임의 포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팬데믹 상황과 묵시적 종말론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일까?  현재의 팬데믹 상황을 ‘묵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묵시’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는 전제 하에서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영어 단어 ‘Apocalypse’는 종종 재난과 종말의 상황에서 사용되지만, 본래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는 말세나 세상의 종말보다는 ‘계시’(revelation)를 뜻한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베일을 들추어 그 뒤에 가려져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묵시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팬데믹을 은폐되었던 진실을 드러낸 일종의 ‘계시’라는 측면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이 팬데믹 상황은 우리가 그 동안 정상이라고 여겨왔던 이 세계의 시스템이 얼마나 병들어 있으며 약자들에게 얼마나 뼈아픈 고통을 안겨주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팬데믹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드러낸 민 낯은 무엇일까?  팬데믹은 우리 인간이 생태계의 꼭대기에 위치해서 자연을 통제하고 다스리고 이용하는, 무적의 주권자가 아니라, 너무나 쉽게 쓰러지고 생명을 잃는 취약한 존재임을 드러냈다. 바이러스를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가 우리 자신 임을 드러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아담)도 결국은 ‘숨쉬는 흙덩어리’(dust that breathes)임을 팬데믹은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또한 팬데믹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의 운명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서로 서로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매우 역설적인 방식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숨결을 통해 전달되는 바이러스가 나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 하다보니 일찍이 듣고 보지 못했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장벽이 생겨 나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서로로 부터 단절되고 고립되어서는 이 위기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깊이 필요로 하고, 서로를 돌보고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호 의존적인(interdependent) 존재로써  상호 얽힘(mutual entanglement)의 관계로 발전하여 인간 사회를 넘어 전지구적 생명 공동체에까지 확장 되어왔다. 

facebook tweeter line
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746주어라!!! 준 것 이상 훨씬 더 많이 받게 된다: 김상대 아주대 교수구자춘2023.03.1013
745우리에게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 김상대 아주대 교수구자춘2023.03.0919
744우리의 인격을 연단하는데 생기는 방해 요소들을 어떻게 봐야할까?: Henri Nouwen구자춘2023.03.0717
743누가 오른 쪽 뺨을 치거든, 외쪽 뺨마저 돌려대어라: Henri Nouwen구자춘2023.03.0520
742Corona Virus (Covid-19) Pandemic, 성경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까?(2/2): 권건우 목사구자춘2023.03.0328
>> Corona Virus (Covid-19) Pandemic, 성경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까? (1/2): 권건우 목사구자춘2023.03.0321
740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는 환상 (illusion)에 사로 잡혀있다.: Henri Nouwen (1)구자춘2023.03.0124
739죽음까지 넘어서는 기다림의 삶이란?: Henri Nouwen구자춘2023.02.2718
738뿌리가 없는 사역은 피상적 일 때 일어난다: Henri Nouwen (2)구자춘2023.02.2512
737흑인들은 장례 행렬에서 왜, '성자의 행진 (Oh, when the saints go marchin' in)'을 부를까?: 퍼온 글구자춘2023.02.2583
736상대방의 존재 속에 감춰져 있는 마음과 진정으로 만나려면: Johann Metz구자춘2023.02.2416
735믿음 생활을 오랫동안 같이해 오던 친구가 교회를 떠났다.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Henri Nouwen구자춘2023.02.2222
734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 이해: Henri Nouwen구자춘2023.02.1933
733목회자 직분에 대한 성경적 이해: Henri Nouwen 구자춘2023.02.1640
732사랑하는 사람은 성장하게 마련이다: 퍼온 글(FN)구자춘2023.02.1519
731뉴트로 (New Tro)와 꼰대(Ggondae)의 차이: 퍼온 글구자춘2023.02.0826
730싫증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의 성장이 멈췄기 때문이다.: 퍼온 글(FN.)구자춘2023.02.0540
729휴스턴 서울교회, 김종진 집사님의 간증 집회를 마치며.구자춘2023.01.3115
728삶에서의 절망은 무엇이며, 어떤 형태가 있을까?: Soeren Kierkegaard (2/2)구자춘2023.01.1332
727삶에서의 절망은 무엇이며, 어떤 형태가 있을까? Soeren Kierkegaard (1/2)구자춘2023.01.1320